안산시내버스 노선들을 본 매니아들은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버스가 안산역 유턴 해 가면서 빙글빙글 도는 걸까? 안산역~중앙역 또는 터미널을 4호선 길 따라 직통으로 이어주고 그런 노선 있어도 되지 않나?
먼저 질문 하나를 해보겠다.
여러분들은 경제학 박사네라는 드립과 같이, 경원여객이 짠돌이에다 멀쩡한 버스노선을 빙빙 돌리기 좋아하기 때문에 저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 생각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경원여객은 다른 버스회사들이 하는 것과 같이, 주민들이 탈 수 있게 노선구성을 했을 뿐이다.
뭔 개소리인가 싶지만, 관련 사례까지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다름아닌 경원여객 5601번의 초창기 노선은 처참한 실패를 했다는 것인데, 이 글에서는 왜 5601번의 초창기 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여러분들의 저 의문에 답을 해보겠다.
일단 아래의 지도에서 빨간색 줄과 파란색 줄을 보자(선이 똑바르지 못한 것은 심심한 이해를 ㅎㅎ;;).
아래의 지도에서 빨간색 줄은 4호선 바로 옆을 따라가는 도로인 39번 국도이며(이하 39번 도로), 파란색 줄은 안산시내버스들이 주로 다니는 도로인 화랑로이다. 두 도로 모두 안산시의 중추 도로로서 없어서는 안 될 도로이다.
그리고 안산은 계획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인데,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가?
39번 도로 및 화랑로 역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도로일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후술하겠다.
5601번의 초창기 안산시내 구간은 지금 기준으로도 대단히 파격적이다.
안산역을 출발하여 4호선 바로 옆 길인 39번 도로를 따라 터미널로 직통운행을 했고, 이후 월피동과 부곡동의 몇 개 정류장만 정차하고 시흥대로로 바로 쏴주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안산역 유턴 그런거 없이 터미널까지 직선으로 가지 않았는가?
직선 노선 아닌가?
그런데 5601번은 바로 저런 경로로 운행한 탓에 처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도무지 손님이 없었던 것이다.
왜 실패했을까?
주민들이 탈 수도 없었고, 탈 수 있는 곳에서는 낮은 수요를 보였기 때문이다.
5601번의 안산역~터미널 구간에서는 수요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으며, 터미널 이후 구간에서의 수요가 적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시흥대로변 동네들은 안산 생활권이 아닌데다, 안산 사람들은 서울에 직장이 있지 않는 이상은 서울로 나갈 일이 잘 없다(필자도 그렇다). 서울로 나간다 해도, 4호선 역이 가까운 동네들의 경우 4호선을 이용하면 했지 320번 등의 버스는 이용하지 않는다. 4호선이 압도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4호선은 시흥대로 쪽으로는 가지 않지만 금정역에 가면 1호선을 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1호선을 타면 서울 어디어디를 갈 수 있을까도 생각해야 할 점이다.
즉 5601번은 전철에게 시간이면 시간 요금이면 요금 모두 무참히 발릴 수밖에 없었고(이 문제는 현재의 5609번도 가지고 있다), 그나마 4호선 전철역에서 먼 동네들(월피동이나 수암동 등)에서도 시흥대로를 굳이 갈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39번 도로 39번 도로 했는데, 여러분들은 사실 이 도로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다름아닌 4호선 전철을 통해서인데 당고개 방향 기준으로 왼쪽 차창을 보면 바로 아래에 보이는 도로가 바로 39번 도로다.
이 도로를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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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로 건너편으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물론 전철역 앞의 경우 지하도가 있으며, 신호등이 설치된 사거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다음 횡단보도까지의 간격이 매우 길기 때문에 전철역 앞이 아닌 이상, 길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몇백m를 걸어가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주민들의 거주지<>길 건너편 정류장 간 이동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여러분들이 길 하나 건너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 걸 매번 해야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39번 도로를 무단횡단하겠다? 정말 가서 그 도로를 딱 한번만 봐도 무단횡단은 자살 행위이며, 개죽음 당하러 가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건물이 없고, 있더라도 주거 건물이 아니다.
39번 도로 주변에는 건물이 없으며, 그나마 있는 건물들도 주거 건물이 아닌 상업 건물이다. 따라서 특정 요일에는 수요가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은행이 공휴일에는 문을 안 여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여러분들도 그 날은 은행을 안 가겠지만, 은행원들 역시 당직 등을 제외하면 거기 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39번 도로 자체가 주민들의 시내 이동을 위한 도로가 아닌데다가, 도로변의 그 상업 건물들도 전철 또는 화랑로 상에 운행되는 시내버스 노선을 이용해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으며 이쪽이 더 유리하다.
3. 전철역 앞을 제외하면 정류장을 만들 만한 곳이 없다.
2번에서 언급된, 39번 도로의 용도 문제와 연관된다.
39번 도로는 시외 이동을 위한 간선도로이며 화랑로는 주민들의 시내 이동을 위한 도로인데, 둘이 쌍둥이 역할을 하며 교통량 분산을 하고 있다.
(여기서 시외 이동은, 안산 주민들이 시외로 나가는 것 외에 다른 도시 주민들이 안산을 거쳐 다른 도시로 가는 것도 포함된다. 시화만 해도 안산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39번 도로를 따라가면 수인산업도로와 연결되어 수원 등 생각보다 많은 지역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만약 시외 이동을 위한 자동차의 행렬이, 주민들의 이동흐름과 합쳐진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심각한 도심 정체가 발생하게 된다.
안산은 인구 10만 겨우 넘는 조그만 도시도 아니고 70만 도시인 데다가, 상권이 중앙역 앞과 상록수역 앞으로 편중이 되어 있으며 시청 역시 중앙역 앞 상권과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화랑로 쪽으로 주민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여기에 시외 이동 흐름까지 합쳐진다면 심각한 정체가 발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따라서 안산은 애초에 주민들의 주된 이동로와 시외 이동로를 아예 분리하여 설계된 도시라고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안산역 앞을 제외하면 교통정체가 잘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그나마 안산역 앞도 평일 출퇴근 때만 아니면 길 안 막힌다).
이런 자동차 위주의 도로인 39번 도로에 버스 정류장?
4호선 전철역 앞을 제외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동차 위주의 도로이기 때문에 화랑로에 비해 주변에 돌아다니는 주민을 찾아보기 매우 힘든 판인데, 퍽이나 그쪽으로 나와 버스 타겠다...
(자전거 등 타고 다니는 주민은 간간히 보이긴 할 거다. 그나마 39번 도로 옆 인도가 자전거도 통행 가능하게끔 안산시가 잘 공사해 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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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들로 39번 국도는 시내버스에게 있어 전철역 앞으로의 접근을 제외하면 금단의 도로가 된다(물론 시외버스는 그 반대로서, 39번 국도 이용시 직선으로 바로 연결이 가능하므로 오히려 이용이 권장될 수 있다). 39번 국도를 오래 지나가게 되면, 저러한 도로 특징 때문에 어떤 회사 시내버스라도 파리가 날리게 되어 있다. 손님이 타지도 않지만, 타려고 해도 이용하기 어렵다면 누가 그런 시내버스를 타려 하겠는가?
따라서 안산시내버스는 화랑로를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화랑로 주변으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공공기관 및 안산 제1의 상권이 있으니까.
버스가 주거지 가까이 접근하면서, 그곳 주민들이 이용할 만한 장소로 가 주어야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겠는가?
또한 안산역의 경우 화랑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원곡동을 거치는 방법과 511번의 운행경로대로 가는 방법, 그리고 123번의 운행경로대로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원곡동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안산역 앞의 경우 바로 좌회전을 하여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고 무조건 건너편 차선으로 이동 후 진입할 수밖에 없다. 유턴을 해야만 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안산역 위의 원곡동은 물론 중복노선이 많은 것은 문제점이긴 하나, 공단 출퇴근 때문에라도 버스 이용객들 자체는 많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리고 511번이나 123번처럼 운행하게 되면 원곡동을 경유하지 못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123번의 경우 더 심각한데, 사실 123번은 대부도 및 시화방조제 가는 차편으로 유명세는 있으나 이용승객이 그 높은 인지도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편이다(123번의 운행간격이 현재와 같이 된 것은 안산시의 큰 지원이 있었기 때문일 정도인데, 무정차구간이 길고 대부도의 인구가 많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많이 타는 구간은 노선 전체 길이 대비 매우 적다. 그리고 주민을 제외하면 MT철 등 특정 시점에만 사람이 몰린다). 따라서 123번처럼 운행을 하게 되면, 신길지구 경유 노선이 아닌 이상은 안산역 인근의 수요를 다 놓치는 거나 다름없이 된다.
이쯤 되면 의문이 풀리지 않겠는가?
5601번이 초창기 때 파리만 날린 이유만 봐도 설명이 될 것이다(역사가 중요한 이유도 이런 것들 때문일 듯 ㅋㅋ).
P.S.
전철의 속도 때문에 아주 자세하게 39번 도로를 볼 수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언급했던 내용을 관찰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한번에 못 봤다면, 반대방향 전철을 타서 요령껏 보면 되지 않는가? 참고로 39번 국도 앞에 있는 4호선 전철역들은 모두 양방향 횡단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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