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동안 시승기를 못 쓰고 있다가 여유가 생겨 조금씩 조금씩 시승기를 써나가고 있는데, 결국에는 이 날의 시승기를 쓰게 되는 날이 찾아오는군요. ㅎㅎ 사실 이날 전후로 있었던 일들 생각하면 쓰고 싶지 않은 시승기였고 실제로도 안 쓰면 그만이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한 사람과의 한때의 좋은 추억이었으니 이 시승기를 적게 되었습니다. 이날 저는 여르니님을 만나기로 하고 수원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원래대로였으면 오래간만에 만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어야 하지만, 이 때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날 시승을 나오기 몇 주 전, 여르니님과 저의 또다른 지인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에 저는 최대한 좋게좋게 잘 말해가며 이걸 봉합할 생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여르니님과도 대화를 시도했더니 정말 한참 뒤 돌아오는 그의 카톡은... 정말 제 톡을 보기는 한 건지 매우 의심될 정도로 그저 자기 할말들 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변명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을 그런 말들뿐이었습니다. 대화 상대인 저는 전혀 안중에도 없이 말이죠.
결국 대화를 하면 할수록 화를 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화낼 생각은 정말 0.1도 없었고 혼낼 생각으로 대화를 시도했던 것 또한 전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정말 어지간해서는 나쁜 말은 하지 않기에 제가 나쁘다고 말할 정도면 진짜로 개막장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었고, 그동안 만나면서 여르니님에게 화 한번 내지 않았던 제가 화를 낼 정도였으면 분명 뭔가 이유가 있다는 소리인데, 그는 이런 사실조차 전혀 생각하지 않았죠.
이 일이 있은 얼마 후, 그래도 본인이 느낀 것이 있었는지 한번 만나자고 하는데 그게 바로 2017년 6월 25일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이에 저도 OK를 하여 여르니님이 있는 수원으로 가고 있었는데, 여르니님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서는 버스여행을 해야 한다는 뜬금없는 소리를 그것도 명령조로 하니 정말 열이 뻗치게 된 저는 그딴 버스여행은 안 할 거라고 길길이 뛰고야 말았죠. 그랬더니 그가 그럽니다. 그러면 다시 집에 가라고.
네???????
제가 무슨 택배 상자입니까? 반품당해야 하는 존재인가요?
내가 누구 때문에, 그리고 무엇 때문에 평소에는 갈 일도 없는 수원까지 가는건데 누구 맘대로 오라가라 하는 건지 ㅡㅡ;;
사실 제 입장에선 오늘 수원은 여르니님에 대한 애정이 있었으니까 간 것일 뿐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솔직히 오늘 수원 안 갔어도 제겐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었고, 제 입장만 생각한다면 그 편이 사실 더 좋았습니다. 집에서 쉬든지 다른 데 가든지 하면 되지, 굳이 이렇게 화를 내가면서 바보짓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요. ㅎㅎ
결국 몇 마디 더 오가니 여르니님도 움찔했는지 다시 돌아가란 말은 하지 않더군요. 저도 여르니님 때문에 혼자 속을 끓여왔었기는 하지만(내가 그저 자기를 싫어해서 그랬을 거라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걱정이 되어서였죠) 그를 포기한 상태는 아니었었기 때문에 어쨌든 우리는 만나게 되었고, 제가 말하려던 것을 5%라도 말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여르니님도 제 말을 듣는(척이라도 할) 수밖에는 없게 되었고, 그런 여르니님을 보면서 안타까움도 들었습니다. 결국에는 제 말대로 일이 되어갈 것이고 그게 경우에 맞다는 걸 알게 될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 말만 잘 들어도 중박 이상은 친다는 걸 그간 보기까지 했을 텐데 도대체 왜 그리 멀리 돌아가는지 말이죠.
이런 그를 보면서 그동안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지가 눈에 보였지만, 어쨌거나 여르니님도 최대한 제 말을 들어준 게 보였고 저도 그냥 집에 돌아가기는 그렇고해서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다가 동작구 마을버스를 타보기 위해 사당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결국은 자기가 원했던 버스여행, 이렇게 가게 되었고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도 제가 그렇게도 야박한 인간인 건지 -ㅅ-;;). 수원역에서 사당역은 그 유명하신 7770번을 타면 40분만에 모셔다주기 때문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사당역으로 갈 수 있었죠.
사당역에 내린 저는 어떤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을 하다, 여르니님을 데리고 극동아파트로 가는 동작18번에 승차합니다. 그쪽으로 동작17번도 가기 때문에, 힘 안 들이고 극동아파트 종점에서 환승할인을 받아 다시 사당역으로 나올 수가 있었죠. ㅋㅋ
동작18번을 타려면 사당역 12번출구로 가야 했는데, 하필이면 7770번 내린 데에서도 길 건너 한참 올라간 곳에 있다보니 생각보다 멀긴 했지만, 어쨌거나 버스를 타고 나니 이수역을 찍고 남성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을 틀더군요. 그랬더니 경사가 있는 도로가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곧 아파트단지 안으로 버스가 들어갑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있는 주차장 앞 도로를 버젓이 누비고 다니는 마을버스에 신기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버스는 역시 사전에 예상한 대로, 네이버 지도 및 어플에 그어진 경로와는 다르게 극동상가까지 올라가서 운행을 마쳤죠(네이버 지도 및 어플로 동작 17번, 그리고 동작 18번 찍어보면 극동아파트 쪽 경로에 끊어진 부분이 있을 겁니다).
동작18번은 한쪽에서 시동 끄고 쉬고 있었고, 계속 버스를 기다리니 곧 동작17번이 와서 승차합니다. 당연히 환승이 찍히기는 하지만, 노선도 2개가 들어오는데다 환승 찍힐 일도 은근히 많을 것이라서 우리의 존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묻혀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노선은 이수역까지 동작18번과 경로가 똑같았지만, 동작18번을 두 번 타야할 일을 없애주는 나름 고마운 존재였죠.
힘 하나 안 들이고 이수역으로 다시 나온 우리는 낙성대역으로 가는 동작06번을 승차합니다. 이 노선은 장승배기쪽으로 가다가 좌회전을 틀더니 사당5동의 높은 언덕을 하나 크게 넘고는 낙성대역에 도착하더군요. 이 언덕 말고는 볼 것이 그닥 없는 노선이긴 했지만, 지하철로만 가려면 정말 멀리까지 가서 환승을 하거나, 가깝게 가자면 환승을 2번 해야하는 이지선다를 강요받게 되는 이 지역의 2호선과 7호선 라인을 속 시원하게 이어주는 차편이라 주민들이 이용하기에는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타볼까 머리를 굴리다가, 달마사를 가기로 하고 동작14번을 탑니다. 달마사에 가면 동작01번과 21번이라는 산동네 마을버스와 환승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제 슬슬 밤을 향해 치닫고 있던 오늘의 멋진 피날레가 될 것 같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죠. 덕분에 우리는 동작06번을 탈때 지나갔던 사당5동 언덕길을 또 지나가게 되긴 했지만, 언덕길 이후로는 이수역이 아닌 숭실대쪽으로 가게 됨으로서 동작06번과는 안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숭실대 후문에서 우회전을 한 버스는 곧이어 엄청난 언덕길을 열심히 올라가줍니다. ㅎㅎ
꽤 굵은 언덕길을 오르고 나니 달마사 종점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내리막이었기 때문에 버스는 아슬아슬한 기울기를 유지한 채 회차를 했습니다. 역시 서울은 산동네 마을버스가 정말 재밌더라구요. ㅎㅎ 어플을 보니 동작21번이 20분정도 뒤면 온다고 되어 있어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동작01번 가는 쪽이 아닌, 그 반대편으로 살짝 이동해 줍니다. 동작21번은 타는 장소가 약간 달랐기 때문이었죠.
동작01번이 워낙 자주 오는 버스여서 동작01번이 들어와 회차하는 걸 3번은 보고 난 뒤, 드디어 우리가 탈 동작21번이 도착했고 흑석역을 향해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쪽은 동작21번만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시승 가치는 높았죠. 이번에는 이 버스를 상도역까지 쭉 완승을 하여 여르니님의 완승욕구를 채워주었고 덕분에 타려면 생각보다 기다려야 되어 골치아픈 이 노선은 다음에 여기 올 때는 제낄 수도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ㅋㅋ
흑석역을 찍은 버스는 중앙대 정문으로 들어갔고 동작01번과 같은 경로로 상도역까지 갔는데, 중앙대 정문에서는 저만치에 5524번 출발장소가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여르니님 군대 면회를 위해 현충원으로 갔을 때에도 5524번을 탄 적이 있었는데 그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군요. ㅎㅎ
중앙대의 쩌는 언덕길을 감상하며 상도터널 윗길을 넘어갔다 내려오는 체험까지 한 우리는 상도역에 내린 후, 근처 피자집에서 저녁을 먹고 귀갓길에 오릅니다. 이것이 여르니님과 함께한 마지막 시승이 될 거란 사실은 알지 못한 채...
뭐, 제가 그에게 이런 말도 해주고 저런 말도 해주고 할 만한 건 다 했었던 판인데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을 살다보면 마냥 "잘했어요 우쭈쭈~" 해줄 수만은 없건만, "아 쟤는 자기 생각만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라고 제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반응들, "아 내가 자기에게 화만 내니까, 결국 쟤는 나를 그저 보기 싫은 귀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구나. ㅎㅎ"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반응들만 저에게 돌아오니 그의 그런 선택을 존중해 주는 수밖에는 답이 없는걸요. 참으로 씁쓸하기만 한 이번 시승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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