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설악, 모곡 등을 다녀오고 두달이 지나고서야 여행기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눈도 오고 날도 추워 정말 문자 그대로 아무데도 못가봤었네요.
오늘은 볼일이 있어 서울에 나왔다가, 안산으로 가보게 되었습니다. 목적은 안산 본토의 오지노선인 경원여객 70번을 타 보는 것. 안산 본토 지역을 다니는 노선버스들은 거의 대부분 시간표 보고 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주 오지만, 소수의 예외는 있었습니다. 바로 태화상운 71-2번, 경원여객 70번, 72번, 78번이었죠.
그러나 72번과 78번은 본오동, 사동 등지에서만 다니는 "통학용 맞춤버스"로 운행되는 노선이나 다름없으며 71-2번이나 72, 78번은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서문, 명휘원 등을 제외하면 다른 버스로도 거의 대부분 대체가 가능했습니다. 이들은 오지노선과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 논외로 했을 때 진정한 오지노선은 70번인 것이었죠.
이러한 70번은 학교 다닐 때 타봤더라면 좋았지만 이래저래 미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발지가 상록구청이라곤 하는데 어디 가서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시간표도 알 수가 없었으며, 다른 먼 동네들도 가봐야 했었던 겁니다. 개인 사정으로 시승을 미룬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럴 땐 경원여객이 참 짜증나기도 합니다. 홈페이지까지 있으면서 왜 35번이나 70번이나 72번, 78번 등의 시간표 안내는 안 해 주는 것인지 - ㅅ-;;; 그저 승객 편의 차원에서 간단하게 올려놓기만 해도 되는 건데 말이죠(그래야 나 같은 사람도 한번쯤 타 보기라도 하지 ㅋㅋ). 하지만 안산의 경우 70번이나 72번 같이 잘 오지 않는 버스는 어쩌다 나타나도 사람들이 "어 저거 뭐지..." 하면서 타려고 하지를 않는다고 하니, 사람 길바닥에서 노숙시키기에 일가견 있는 노선버스들은 안산이든 어디든 도시에서는 이래저래 존재감이 없나 봅니다. ㅋㅋ
어쨌든 저는 카이저님 덕택에 인터넷에서 어렵게 경원여객 70번의 시간을 알아낼 수 있었고, 비록 몇 개월 전의 시간표이긴 했지만 지금도 이게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렵사리 석호초등학교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원래는 여유있게 와야 했지만 여의도에서부터 오다보니 너무 오래 걸리더군요. 덕분에 성안고사거리에 내렸던 저는 석호초등학교 정류장까지 무조건 뛰어야 했습니다. 석호초등학교 정류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 넘어 있었는데, 아 70번 타보려고 어렵게 왔는데 놓친건가;; ㅜㅜ 진짜 힘들게 왔는데 고작 몇 분 차이로 놓친다는 건 너무 아까웠기에 경기도 버스정보시스템 ARS까지 이용했습니다(※).
※ 이 당시는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므로, 2023년 4월 현재와 같이 앱을 이용해 도착정보를 조회한다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아!
그런데 천만 다행히도 70번이 5번째 정류장 전에 있다는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그걸 믿고 기다리니 70번이 나타나 상록구청 건물쪽으로 쓱 가더군요. ㅋㅋ
어라? 그런데 70번이 본인이 서 있는 정류장으로 정말 금방 옵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돌려 온 듯한데, 버스가 그냥 가버릴까 봐서 타겠다는 신호를 주었더니 문이 열립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안산의 오지노선인 70번을 타게 되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신입인 듯한 젊은 분이었고, 제가 타자마자 버스는 앞으로 달립니다.
버스는 성안고사거리에서 터미널 가냐고 물어본 아주머니 2분을 태우고 고잔고등학교를 경유하여 중앙역 쪽으로 갑니다.
중앙역을 지난 버스는 터미널 쪽으로 바로 갈 줄 알았는데, 웬걸 그동안 버스가 다니지 않을 것만 같은 길로 우회전하더니 다시 좌회전을 하는 겁니다. 이 구간이 70번에게 있어 좀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한양대 정문 바로 앞으로 다니던 옛 99번처럼 그냥 바로 터미널쪽로 찔러주면 안 되나 싶습니다. 이걸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는데 -ㅅ-;;;
그런데 아까 성안고사거리에서 탄 그 아주머니 2명 중 한명이 갑자기 제게 종이를 내밀더니 이 시대의 통치자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대순진리회 등과 관계된 사람들인가? 어이가 없더군요. 게다가 이 시대의 통치자가 누구냐는 질문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돈이 최고라는 이 시대이니 당연히 부자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질 것이고, 그걸 넘어선 차원에서의 통치자라면 "판 밖의 인물"이니 남들 모르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죠. 뭐라뭐라 떠들어도 정작 지 몸땡이 하나 어쩌지 못하는 놈을 교주랍시고 믿는 건 왜 그런지 정말 모르겠네요. -ㅅ-;;;
그래서 딱 잘라서 이야기를 하니 그들도 더 이상 어쩌지는 못했고, 터미널에서 그들이 내리는 걸 물끄러미 볼 수 있었죠. 기사아저씨께서도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를 수가 없었고, 그것으로 말이 트여 대화를 하면서 양상동 종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연천에 있는 재인폭포 가는데 폭포 근처로 가는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6km나 걸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니(2009년 11월 24일 시승기 참고) 놀래시더군요. ㅋㅋ 70번에는 고정 기사가 없으며, 경원여객 소속 노선들 중에서 막차가 제일 빨리 끊기는 축에 들다보니 짬이 좀 되어야 운전해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덤이었구요.
버스는 어느새 성포중학교를 지나 시낭구장 입구까지 와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70번 종점인 양상동이 나오게 됩니다.
시낭구장 입구를 지난 버스는 위의 사진 속 저 멀리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노선버스로 가보기 힘든 곳으로 들어섰습니다.
양상동입구 정류장을 지나 농기계 전용도로라 적혀있던 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니 일단은 평범한 왕복2차선 도로가 나옵니다. 하지만 경기도 안산시에도 이런 동네가 있었을 줄은 몰랐기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죠.
고속주유소 정류장을 지나니 바로 안산IC입구가 나오는데, 때마침 안내방송도 고속주유소 다음은 양상동 종점이라고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여기 근처에 예비군 훈련하는 반월교장이 있던데 나중에 본인도 설마 야비군 훈련때 여기 걸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뭐, 70번 시간표만 있으면 OK죠. 70번을 놓치더라도, 다른 버스를 이용해 양상동입구에 내린다는 선택지도 있구요. -ㅅ- ㅋ
사실 여기 안산IC는 전에 의정부로 가는 진흥고속 직행버스를 탔었을 때 지나갔다보니 낯설지는 않았지만, 고속도로 진입로 말고 오른쪽에 따로 나 있는 길로 가면 뭐가 나오는지 항상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탄 버스가 그 길로 가네요. 그런데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 이럴수가 1차로 길이 나오는 겁니다. 안산에도 이런 노선이 있었을 줄은 ㄷㄷ;;;
버스는 이 1차로 길을 달려 종점인 양상동 마을회관 앞에 멈춰섭니다. 안산에도 1차로 길을 달리는 노선이 있었다니, 그저 놀라고 또 놀라울 따름입니다.
양상동 마을회관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3시 20분. 전형적인 시골 마을회관의 모습이었지만, 경기도 안산시에 이런 곳이 있다니, 그리고 분명 "리" 가 아니고 "동" 인데 마을회관이라는 게 있으니 참 신기했습니다. 게다가 주변을 둘러보는데 경치도 꽤 괜찮더군요. 그러다 마을회관 근처에 있던 큰 개 두 마리와 놀던 기사아저씨께서 한 마디 하십니다.
기사아저씨 - 나갈 때 어떻게 나가게?
본인 - 글쎄요...운동 겸 걸어서 나갈까 그냥 이거 다시 타고 나갈까 고민중이에요.
기사아저씨 - 그냥 다시 이거 타고 나가. 돈 안 받을 테니까.
본인 - (가뜩이나 이거 손님 없는데) 에이~ 돈도 안 받으면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
그래도 괜찮으니 그냥 다시 타고 나가기를 권하시는데,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더 이상 거절하기도 좀 뭣해서 그냥 다시 타고 나가기로 하고 출발시간을 물으니 오후 3시 30분이랍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7분이었죠.
안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면서, 비록 1차로 길은 아주 긴 편은 아니었지만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오줌이 마려워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이윽고 출발시간인 오후 3시 30분이 되어 버스는 다시 출발합니다. 기사님의 휴식 시간이 끝나기도 했구요(상록구청에 도착하면 시간표보다 항상 10분 늦기 때문에 바로 돌려 온다고 합니다). 다시 1차선 길을 달리는데 어라? 버스가 유턴해서 다시 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바로 옆길로 나가버립니다. 알고보니 마을회관 쪽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P자 형태였고 마을회관이 반환점의 위치에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마을회관 앞까지 버스가 들어왔다가 거기서 후진 및 전진을 반복하여 돌려 나오게 되는데, 70번은 회차하기가 매우 편한 노선이더군요. ㅋㅋ
양상동입구를 지나 다시 시낭경기장 입구로 들어오니 다시 도시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자동차로 정말 가까운 거리인데도 왜 그리 차이가 나는지;;; 이번에는 월피동에서 학생들이 꽤 탔지만 중앙역에 이르니 다 내려버리네요. 기왕이면 터미널 이후 바로 중앙역 뒤편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조금 돌아서 가니까 그 점에서는 조금 좋지가 않았습니다.
버스가 고잔고등학교를 지날 즈음, 기사아저씨께 70번이 상록구청이 종점인데 도대체 상록구청 어디에서 타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질문을 드렸더니 직접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마침 버스도 시간 상 상록구청에서 바로 돌려 나와야 되겠다, 아까 탔던 석호초등학교에서 내리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이윽고 버스는 성안고사거리를 지나 석호초등학교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구청 건물을 끼고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상록구청에서 70번을 타려면 구청 건물 바로 앞에 있던 정류장에서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늦었을 때에는 그냥 구청 건물앞에서 유턴해서 바로 양상동으로 다시 가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해 주시더군요(운전기사에 따라 다르다네요).
결국은 석호초등학교에서 기다렸다 타는 게 안전빵이었네요.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석호초등학교에 하차합니다. 기왕이면 박카스라도 한 병 드렸어야 되는데, 뭐 살 틈이 없어서 그러질 못해 죄송하다고 하니 해맑게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시던 경원여객 70번 기사님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안전운행 하시고 항상 웃으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참한 여자 만나서 장가도 가시구요 ㅎㅎ
이후 저는 푸른마을 4단지에서 10번을 타고 상록수역으로 간 뒤 301번을 타고 귀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쩌는 길을 한참동안 들어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안산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s to
카이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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