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의 오지노선들을 타보기로 한 저는 송내역으로 가서 8106번을 타게 되었습니다. 오전 9시 50분에 출발하는 차는 놓쳐버리고 오전 10시 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가 서현역에서 17번을 타고 문형리를 향해 가게 되었죠.
그런데 오늘이 토요일인데다 중고등학교 중간고사 시즌이라 그런지, 오후 12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수내고, 대신중 등등 온갖 학교의 학생들이 버스에 들어차서 수내동파출소부터 만석이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버스가 시경계를 넘어 오포읍에 진입하고부터는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문형4리까지 가는 내내 한 정류장도 안 빼놓고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혹은 대여섯 명씩 내리기까지 하더군요. 이미 예상을 어느 정도는 했었지만 서현역에서 문형리 가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빨리 가자면 1500-2번 등 직행좌석버스를 타야 했네요. -ㅅ-;;;
이 덕분에 예상보다 10분은 더 걸려 문형삼거리에 도착한 상태로 문형삼거리 바로 다음 정류장인 봉골입구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오후 12시 30분까지 봉골종점으로 갈 수는 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우림아파트를 지나니 봉골사거리가 나왔고, 거기서 직진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약간 넓은 공터와 함께, "버스 정류장이므로 주차 금지" 라는 의미의 표지판이 어느 건물 앞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 건물은 문형1리 마을회관이었고, 봉골 노선은 여기서 회차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잡게 되었습니다.
마을회관 게시판을 보니 봉골 노선 시간표도 있더군요. 그런데 본인이 적어갔던 시간표와 약간의 오차가 있길래(※) 적어갔던 시간표를 약간 수정하다보니 어느새 오후 12시 30분이 다 되어갔고, 드디어 버스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 광주시내버스는 차고지 출발 시간이 아니라, 보건소 또는 축협 출발 시간을 알려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차고지가 시내에서 떨어져 있으며 보건소 출발 노선과 축협 출발 노선의 행선지들이 정형화되어 있는 등 독특한 특징이 있어서인데, 차고지~보건소와 차고지~축협 모두 5분 정도 걸리므로 차고지 출발 시간은 시간표에서 5분을 빼면 되었죠. 하지만 이 당시에는 이걸 몰라 오차라고 했었네요.
버스가 역시 제가 서 있던 마을회관 공터에서 회차를 합니다. 회차를 마친 버스를 타면서 카드를 대니, 으윽 -ㅅ-;;; 환승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순간 기사아저씨께서 이건 뭐지 하는 눈빛으로 저와 카드 단말기를 잠시 바라보셨지만, 다행히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그냥 넘어갑니다.
버스는 제가 걸어왔던 길 그대로 다시 문형삼거리로 나왔고 17번과는 다르게 일산리를 경유하는데, 일산리는 경남여객 20-1번 종점이 있는 그 동네라 과연 어떻게 생긴 곳일지 궁금해지더군요. 하지만 벼락바위라는 정류장을 지나 우회전을 한 버스는, 안으로 잘 가다가 아무런 정류장 표시도 없는 길가에서 돌려버립니다. -ㅅ-;;;
이럴 때 20-1번이라도 와 있었다면 회차지 파악에 좀더 도움이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이번에는 20-1번의 시간표를 살펴보니 시간이 안 맞아 환승을 하지도 못했죠. -ㅅ-;;; 그래도 20-1번은 오지노선 아니라는 그분의 말씀이 정말 맞다는 것은 확인할 수는 있었습니다. ㅋㅋ
버스는 오포읍사무소를 찍고 고산2리를 들른 후, 광주시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오후 1시 5분에 축협에서 있는 번천 경유 서하리 노선의 시간은 과연 맞출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데, 축협이 차고지에서 멀다보니 축협 출발 노선은 제 시간보다 약간 늦게 오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희망을 겁니다.
축협에는 오후 1시 10분 안 되어 도착하였고, 번천 경유 서하리 노선을 놓친다면 보건소에서 오후 1시 15분에 있는 신월리 경유 무갑리행 버스를 탈 생각으로 버스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번천 경유 서하리 노선은 오후 1시 10분이 넘어서도 오질 않았고, 생뚱맞은 퇴촌 경유 정지리, 원당리 노선이 등장하더군요(이 시간에 올 버스가 아닌데????). 결국 타려던 버스는 놓친 것 같아 무갑리 노선이라도 사수하기 위해 경안주유소로 걷는데, 이럴수가 번천 경유 서하리 노선이 뒤쪽에서 갑자기 나타납니다. -ㅅ-;; 어쨌든 저 버스를 놓치면 무갑리 노선을 타야 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하루 몇 번 있지도 않은 번천 경유 서하리 노션은 오늘의 코스에서 완전히 제외해야 하므로 얼른 경안동 주민센터 앞으로 뛰어가 간신히 번천 경유 서하리 노선을 잡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탄 버스.
카드를 대니 환승횟수 5회가 다 차서 900원이 새로 찍혔고, 낮시간대였지만 학생들이 몇 명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토요일이었는데, 토요일에 일찍 끝나는 순간이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더 이상 중고등학생이 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저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옛 추억만이 생각날 뿐이었습니다. 공부 생각하면 영~ 아니긴 했지만 시험기간에 일찍 끝나는 것도 그렇고, 학교 도서실도 정말 짱이었는데 말이죠. -ㅅ- ㅋ
그런데 운전석 쪽을 보니 정말 궁금했던 여러 노선들의 시간표들이 붙어있었습니다. 퇴촌 노선의 경우 광주→퇴촌, 그리고 퇴촌→광주 출발시간만 적혀 있을 뿐 종점 출발 시간이나 퇴촌에서 별도로 출발하는 시간이 적혀 있지는 않았던 것이 아쉬웠지만, 시간표도 찾으면 없는 퇴촌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죠. 퇴촌 노선들의 시간표는 분량이 많다보니 카메라로 슬쩍 박아내고, 나머지는 적어간 시간표와 비교하여 (적어간 시간표를) 수정을 합니다. 어쨌든 땡 잡긴 했네요. ㅋㅋ
제가 카메라로 촬영한 시간표와 씨름하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밀목을 지나 번천삼거리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번천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할 줄 알았던 버스는 번천삼거리 바로 전인 광주IC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더군요. 이곳을 지나는 다른 버스들은 1113-번을 제외하고 모두 직진을 해 버리므로, 이제부터는 번천 경유 서하리행 버스의 단독구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번천 경유 서하리 노선은 길이 멋있을 것 같아 나름대로 기대치가 높았는데, 오우 진짜로 경치가 끝내줍니다. 중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린다는 특징이 있어 높다란 교각도 왼편에 보이는데, 잿빛 콘크리트 교각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박진말에 오니 1차로 길까지 잠깐 나옵니다.
박진말을 지나니 간이 직판장이 군데군데 보였고, 곧 "토마토의 고장 서하리" 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발견합니다. 토마토의 고장이라 그런지 토마토 농장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버스는 안골을 지나 서하리 사마루라고 적힌 비석 앞 정류장에 멈추더군요. 곧이어 앞문과 뒷문이 모두 열리고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데 이곳이 종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바로 앞에 번듯한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 건물이 서하리 마을회관이었습니다. 여기는 평탄한 지형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더군요. ㅎㅎ
버스는 오후 1시 40분이 되자, 이제는 익숙해진 그 대문짝만한 빨간 글씨체로 적힌 "광주" 행선판을 내보이며 돌려 나가버립니다. 정류장에는 시간표가 친절하게 잘 붙어 있었는데, 시청 홈페이지에서는 백날 찾아봐야 알 수 없는 정보였기에 디카로 잘 박아둡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바로 앞을 보니 다리가 하나 있더군요. 지도로 살펴보니 저 다리를 넘어가면 무갑사거리가 나왔습니다. 무갑리(武甲里)는 오늘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들 중 하나였는데, 마을 이름치곤 뭔가 특이해서 끌렸던 곳이었습니다. 무인(武人)들의 갑옷이 나와서 무갑리라는데, 무갑산이라는 산도 있는 동네였죠. 이 무갑리를 버스 타고 가보는 순간이 눈앞이었는데, 시간표를 살펴보니 광주에서 오후 1시 15분에 출발했던 그 신월리 경유 무갑리행 버스가 15~20분 후 무갑사거리에 도착할 것 같더군요. 시간도 여유있다보니 저는 평화로운 서하리를 뒤로 하고 그 다리를 유유히 건너갑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시원한 건 좋았지만, 바람이 의외로 세서 소중한 지도책이 바람에 날아갈까봐 죽는 줄 알았다능;;;
하여간 무갑사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다보니 금방 버스가 옵니다. 역시 신월리 경유 무갑리 노선이었죠. 카드를 대니 환승이 찍혔지만 기사아저씨께서는 아무 말씀 없어 그냥 넘어갔고, 버스는 제가 타자마자 바로 우회전을 하여 무갑리로 들어갑니다. 입구부터 1차로 길이 나오고 군데군데 집들이 보이는데, 이곳에 재수학원이 있는 모양인지 메가스터디와 종로학원 팻말이 잊을 만 하면 보이더군요. 이곳 무갑리가 외진 곳에 있다보니 분명 기숙학원일 것 같은데, 공부 하나는 무지하게 잘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말에 오지노선을 타는데 수능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냐잉했지만 말입니다. -ㅅ-;;;
어쨌든 대한민국 모든 재수생과 N수생들 모두 이번 수능은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수능공부 또 하고 싶진 않잖아요. 저는 재수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긴 했지만, 저도 수능공부 또 하기는 싫습니다. -ㅅ- ㅋ
1차로 길을 따라 2km 정도 들어간 버스는 오후 2시 5분에 어느 큰 공터에서 멈춰섭니다. 이 공터 앞에는 보건소와 마을회관, 그리고 마을회관 건물에 딸린 슈퍼(구판장)가 있었는데, 보건소까지 있다니 마을이 꽤 큰가 봅니다. 어쩐지 무갑리 노선이 추곡리 노선처럼 오지노선 치고는 많이 다닌다 싶더라니, 그게 이해가 될 지경이었죠. 저는 이곳에 있는 시간표도 카메라로 찍고, 무갑리 경유 정지리행 버스를 기다리게 됩니다.
오후 2시 10분이 되자 제가 타고 왔던 버스는 다시 광주로 돌아가는데, 다음에 탈 무갑리 경유 정지리 노선은 여기를 오후 2시 25분에 올 것이기 때문에 환승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무갑리 환승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시간표가 좋게 되어 있어 감사할 뿐이었죠. 슈퍼에서 음료수도 사먹고 구경도 하다보니 어느새 오후 2시 25분이 다 되어가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광주공영버스 한 대가 들어와 회차를 합니다.
과연 행선판엔 무갑리와 더불어 정지리가 적혀 있었는데,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으니 역시 환승할인 처리가 되었죠. 그런데 막상 저를 바라보는 기사아저씨의 눈초리가 참 이상합니다. "저 새끼는 뭐지?" 하는 눈빛이었던 겁니다. 어라? 여긴 노선이 2개 들어오는 곳인데?
너무나도 이상한 기사아저씨의 반응에 잠시 생각을 해보니, 맙소사... 아까 봉골에서 만났던 그 기사더군요. -ㅅ-;;; 일단 제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아 저는 뒷문 바로 앞자리에 앉았지만, 기사아저씨께서 아까 봉골에서와 달리 좀더 오래 카드 단말기를 바라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기사아저씨 입장에선 봉골에서의 그 (있을 수 없는) 환승처리도 그렇고, 그때 환승으로 탔던 인간이 갑자기 무갑리에 나타나 또 환승을 찍고 타는 꼴이니 이상할 법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뭔가 말을 할 법도 하건만, 아무 말이 없으니 한편으로는 불안하더군요. 버스가 무갑리에서 오후 2시 25분 시간 맞춰 출발하는 모양인지, 버스가 바로 출발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이중고까지 겹쳐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결국 정지리로 가는 동안 제게 신경을 쓰시지도 않았던 걸 보면, 아무래도 기사아저씨께서 아까 봉골에서 환승으로 탔던 인간이 맞는지 아닌지 헷갈리신듯 하네요. 휴;;;;
2023년 5월 현재 생각해도 나름 무서웠던 이 사건을 뒤로하고, 오후 2시 25분이 되자 버스는 손님 세 분을 더 태우고 무갑리를 출발합니다. 이번에는 무갑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어 퇴촌면으로 들어가는데, 퇴촌면으로 진입하면서부터는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인 경안천이 도로를 따라 나란히 흐르는 멋있는 풍경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합니다.
나눔의집을 지나니 정지리였는데, 정지2리를 지난 버스는 정지1리 정류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사람 한 분 내려주더니 거기서 바로 회차를 합니다. 으악;;
정지리에서 버스가 한 번은 유턴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류장 못 간 곳에서 회차를 한다는 것은 정말 예상치 못했기에 결국 내릴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퇴촌에서 오후 2시 50분에 출발할 정지리 노선을 잡으려면 아무래도 정지1리에서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이거 큰일났다 싶었지만, 기사아저씨가 하필 그분이라 이야기할 수도 없었죠. 결국 저는 울며 겨자먹기로 한 정류장을 거슬러 올라가 정지2리 정자동에서 하차하여 다시 정지1리로 걷게 됩니다.
시간은 오후 2시 35분.
정지1리까지 고작 한 정류장인데 걸어가려니 꽤 멀더군요. -ㅅ-;;; 그래도 앞으로 걷다보니 오후 2시 45분에 아까 버스가 회차했던 정지1리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오 마이 갓! 을 외쳐야만 했습니다. 정류장에 시간표가 붙어 있었는데, 그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50여분 뒤에나 버스가 있었던 겁니다. -ㅅ-;;;
퇴촌~정지리 노선은 광주시청 홈페이지의 시간표를 적어갔었지만, 시청 시간표가 구닥다리였던 것이 이 사태의 원인이었죠. 그러고보니 아까 축협에서 봤던 그 생뚱맞은 정지리 노선이 아까 오후 1시에 광주에서 출발했던 버스였고 말입니다. -ㅅ-;;;
하여간 시청 시간표에 낚이니 기분 정말 좋지 않습니다. 시청 시간표대로만 다녔다면 정지리에서 또 환승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아깝게 되었죠. 그나마 다음 타자로 찍어둔 우산리 노선을 타려면, 퇴촌까지 걷는 수밖엔 없었습니다. 지도를 보니 정지리 바로 이웃 마을이 퇴촌면사무소가 있는 광동리였다는 게 다행이었죠. 시청 시간표는 뭔가 신뢰가 안 갔었는데 결국 정지리에서 낚여 ㅅㅂㅅㅂ 거리며 부지런히 퇴촌으로 걸었고, 오후 3시 15분에 드디어 광동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아까 번천 경유 서하리 노선에서 찍었던 시간표를 살펴보니 오후 2시 55분에 광주시내에서 출발하는 우산리 노선이 있었습니다. 지금쯤이면 버스가 오겠다 싶어 정류장에 서 있는데, 문제는 5분이 지나가도 차가 오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싶어 그 시간표를 다시 살펴보니 2시 55분이 아니라 2시 35분인 듯했는데, 사진의 초점이 맞질 않았다는 아킬레스건은 있어도 그래도 나름대로 알아볼 수는 있었건만, 하필이면 3과 5가 헷갈리게 나와버렸던 겁니다.
결국 그 우산리 노선은 놓쳤다고 보고 다음 버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15분이더군요. 우산리의 단풍도 볼 겸 우산리 노선을 타기로 했는데 막막해진 겁니다. 우산리와 수청리 노선 시간표는 여러모로 답답한 게 많아 적어오기를 포기했었기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죠. 시청 시간표와는 하나도 맞질 않았던 것은 물론, 퇴촌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별도로 있는데도 퇴촌에 가봤자 시간표를 찾을 수가 없으니 방법이 있나요 뭐. -ㅅ-;;;
결국 저는 퇴촌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우산리에 가기로 하고 식사할 곳을 찾아다녔고, 퇴촌농협 앞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버스도착 안내기를 가만히 지켜보니, 38-1번의 도착예정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38-1번은 퇴촌발 우산리행 노선에 부여된 번호였는데 오지노선에는 별 도움 안 되는 번호나 떠들어 대는 안내기가 영 미덥지 못했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데다 시간표도 없으니 안내기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계속 버스를 기다리니 오후 3시 30분에 13-2번이 나타나 사람들을 태우고 강변역으로 가는 것을 보는데, 그로부터 몇 분 후에 안내기에서 38-1번이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얼른 농협 건너편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려보니 과연 오후 3시 40분이 되자 우산리 행선판을 꽂은 광주공영버스 한 대가 나타나더군요. 오우!!
우산리 노선의 시간표는 모른다고 보면 되다보니, 이건 웬 떡이냐 싶어 서둘러 그 버스를 탔습니다. 우산리 노선은 항금리 노선과 똑같은 길로 가다가 관음사거리에서 직진을 하여 천진암으로 달리는데, 13-2번의 출발지인 관음2리를 지나더군요. 퇴촌농협에서 출발할 줄 알았던 13-2번이 관음2리에서 출발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산리 노선의 시간을 알아내기 위해, 저는 기사아저씨께 이거 기다리느라 죽을 뻔했다며 말을 걸었습니다. 기사아저씨께서 "그러세요??" 하면서 시간표를 보여 주시는데, 이야~ 우산리 외에도 수청리 노선의 시간도 적혀 있더군요. 우왕 굿~! 기사아저씨의 허락을 받아 시간표를 소중히 카메라로 잘 박아둡니다. 우산리 노선은 시청 홈페이지의 시간표와 다르게 광주시내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1회 늘었고, 퇴촌에서 별도로 출발하는 시간은 줄어들어 있었죠(수청리의 경우는 운행횟수에 큰 변화가 없는듯...).
친절하신 기사아저씨 덕택에 퇴촌 출발 노선의 시간표에 대한 비밀이 정말 말끔하게 풀려 기분이 좋더군요. 게다가 버스는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정말 여기가 경기도 맞나 싶을 정도의 경치를 보여줍니다.
우산리 가는 길의 경치가 참 좋다는데 그 말은 맞는 말이었나봅니다. 단지 하나 아쉬웠던 점은 지금이 단풍이 들락말락 하는 시기라는 것. 다음에 다시 오면 단풍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산1리를 지난 버스는 천진암 성지 바로 앞에서 회차합니다.
시간표를 가만히 보니 오후 3시 40분에 퇴촌발 우산리행 버스가 출발하는데, 왜 행선판에는 번천이 쓰여 있었는지 의문이 자꾸 들더군요. 그래서 내리기 전에 질문을 드렸더니 광주시내발 우산리 행선판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원래는 퇴촌~우산리 구간만 행선판에 적혀 있어야 맞는 거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셈이었죠. 퇴촌에는 왜 시간표가 없느냐는 이유에 관해서는 짧지만 뼈 있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시간표를 붙여놓긴 하는데, 사람들이 떼어가 버렸다니 말입니다. -ㅅ-;;
여러 사람들, 그러니까 퇴촌면을 방문하는 외지인들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있는 버스 시간표를 왜 떼어가는지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곤지암도 그렇고 시내도 그렇고 퇴촌도 그렇고 여러 버스들이 시종착하는 곳인데 이 중에서 퇴촌만 시간표를 보기 막막한 현실이니, 주민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외지인들은 어떻게 방문을 하라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지만 네이버 지식인에 광주시 무슨무슨 리 가려고 하는데 버스편과 시간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질문이 어느 정도 있던데 말이죠. -ㅅ-;;;
그래도 귀찮을지도 모르는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시고 시간표도 제공해 주신 기사아저씨께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ㅎㅎ 제가 타고 왔던 버스는 오후 4시 10분에 광주를 향해 출발해 버리고, 다음 버스는 오후 5시 15분에 있었습니다. 시간도 남겠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천진암 성지도 구경하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째 첫 인상부터가 기독교, 천주교 신자가 아니면 들어가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ㅅ-;;;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입장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지만, 어쨌든 들어가려고 하니 성당 다니냐는 질문이 들어오더군요. 역시 이곳을 본 첫 인상대로 신자가 아니면 접근 제한이 있는 장소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어떻게 대답을 할까, 그냥 거짓말로 성당 다닌다고 구라칠까 말까(필자는 무교입니다)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쪽에서 (성당) 다니는 곳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물어보는데, 그래서 여기가 어떤 곳인지 보러 와 봤다고 대답하니 오후 4시 30분까지 이 곳으로 다시 내려오면 되는데, 가보려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야 된다고 하더군요. -ㅅ-;;;
지금 시간이 이런데 4시 30분까지 내려오려면 굳이 갈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말을 추가로 해 주시는데, 사실 시간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열기 때문에 폐관시간을 염두에 두고 4시 30분까지 돌아오라는 말을 한 것이니까요. 어쨌든 시간도 그렇고, 신자 아니라고 차별하는 건가 하는 짜증도 밀려와서 성지 안으로 가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지 입구를 구경하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오후 5시까지 잠을 자게 되었죠.
그러다가 낯익은 버스 엔진소리가 들려 얼른 일어나 앉아 있으니 버스가 오후 5시 5분쯤에 들어오는데, 기사아저씨께서 오후 5시 15분에 출발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출발시간에 맞춰 버스를 탔더니,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정말로 저 말고는 아무도 안 타더군요. -ㅅ-;;; 사실 성지를 오는데 거의 열이면 열 차 타고 간다고 하지 버스 타고 가겠냐마는, 그래도 1시간 정도 간격이면 이런 데선 많이 다니는 축인데 다소 아쉬운 감이 들었습니다.
버스를 출발시킨 기사아저씨께서 제게 어디서 왔느냐며 말을 거십니다.
기사아저씨 - 어디서 오셨어요?
저 - 음...사실 좀 먼 데서 왔는데, 경기도 시흥시요. 혹시 아시려나요? (경기도 시흥시는 서울 시흥동과 헷갈리는 수가 많은 동네인데다, 인근의 부천, 안산, 안양에 묻혀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기사아저씨 - 시흥? 알지요~ 천진암에는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오는데요. 그런데 학생이신 듯 한데 천진암에는 왜 왔었어요?
저 - 아, 저는 직장인인데 천진암 온 김에 한번 볼 겸 왔었어요.
기사아저씨 - 오 그래요? 학생 같아 보이는데 ㅋㅋ 오늘은 어디어디를 가 봤었어요?
저 - 서하리하고 무갑리, 정지리, 그리고 봉골요.
기사아저씨 - 어유 좋은 경험 하시네요. 제 나이가 몇인 것 같아요?
저 - 음....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정도요?
기사아저씨 - 40대 초반이에요. 젊어서 그렇게 여행하는 게 참 좋죠. 저는 젊어서 그런 것을 못 해본 게 참 후회가 되거든요. 처자식 있고 직장 다니는데, 어떻게 여행을 할 수 있겠어요?
저 - 그렇죠...집안의 가장이니까요.
기사아저씨 - 처자식 생기고 하면 모든 게 가족 위주로 돌아가니까 나만의 시간을 내서 이렇게 여행을 가본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마음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정말 안 되요. 아까전에 천진암에서 자전거 타고 오신 내외분 보셨죠? 저도 그렇게 하루쯤은 자전거 끌고 어딘가 다녀오고 싶은데 힘들어요.
저 - 네 무엇보다 시간이 안 되죠.
기사아저씨 - 맞아요~ 일 하랴 뭐 하랴 하면 그런 시간이 안 남죠. 젊을 때 (보통 젊은이들 하는 대로) 친구들과 놀고먹고 등등 남들과 같이하는 것만 했었고 나만의 시간을 내어 그렇게 다녀본 적이 없다보니, 자식들에게도 젊어서 무전 여행 등등을 하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라고 권하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르니 알려주질 못해요.
본인: 아 정말 그렇겠어요. 해보질 않았으니 모르는 것을 알려 준다는 게 참 어렵죠;;;
이렇게 대화를 하다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퇴촌으로 올 때 주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산리 이쪽은 별로 안 오고 수청리 쪽으로 많이들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무갑리, 정지리, 우산리 이쪽 가봤으니 다음 번에는 수청리 노선을 한번 타 보라고 적극 권하시더군요. 팔당호를 끼고 쭉 달리는데 정말 운치있고 멋지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 가면 물안개까지 피어 있다면서요. 수청리를 (운행 코스상) 하루 2번 들어가보는데, 경치가 좋다보니 매번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ㅋㅋ
이 정도면 상상만 해도 안구정화와 마음정화가 동시에 될 것만 같은 그런 경치일 듯한데, 미리 속단하면 곤란하긴 하지만 경기도에서 강가를 끼고 달리는 노선들 중에서는 수청리 노선이 정말 지존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수청리는 수청1리의 어느 다리 밑이 종점이고, 퇴촌~정지리 노선은 정지리가 아니라 원당리 나눔의집 정류장까지 간다고 합니다(정지리 노선도 같이 물어봤었습니다. ㅎㅎ).
또한 퇴촌에 시간표가 붙어 있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까 기사아저씨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한 가지 덧붙이는 말씀이, 주민들이 버스 시간같은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질 않는답니다. 차가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버스가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일 텐데, 퇴촌에는 13-2번 말고는 자주 있는 버스가 없는 현실에서 시간표를 외면하다니? 뭔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제가 퇴촌 주민이 아니니 그런 의문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후 6시 10분이 되자 버스는 광주시내에서 아주 가까운 곳을 달리고 있었는데, 도로 구조 때문인지 광주시내에서 나갈 때와는 달리 왕복8차선 큰길을 계속 달리더니 광주시청 정류장을 지나자마자 바로 좌회전을 해서 밀목사거리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버스가 좌회전하는 곳 바로 근처에 정류장이 있다보니 정말 위험하겠더군요. 때마침 그 정류장에 버스를 타겠다는 손님이 있다보니 기사아저씨께서 좀 무리를 하셔서 어렵게 승객을 태우고 좌회전을 하는 장면도 보게 되었죠. 정류장을 현 위치에서 100m쯤 뒤로 옮기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ㅅ-;;;
버스는 밀목을 지나 시내를 거의 반 바퀴 돌다시피 하여 축협에 도착합니다. 축협 앞 도로는 축협→파발교 방향으로만 통행 가능한 시내 도로 구조와 차고지 위치, 터미널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는데, 오늘에서야 광주시내버스들의 시내 운행경로가 머리에 들어오더군요. 이런 운행 환경이니, 버스 시간표가 차고지 기준이 아니라 보건소 기준이니 축협 기준이니 하여 정류장들마다 시간표들이 붙어 있을 수밖에는 없었던 겁니다. 마침 기사아저씨께서도 광주시내버스는 보건소나 축협 시간만 알아두면 탈 수 있다고 알려주시더군요.
저는 축협에서 하차하며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립니다. 기왕이면 수청리 노선을 타는 날 이 기사아저씨가 걸리면 좋을 텐데 ㅋㅋ 하여간 좋은 말씀 주신 기사아저씨께 정말 고마웠습니다. ㅎㅎ
이제 저는 집으로 가기 위해 모란역에서 직행을 타기로 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고, 오후 6시 35분에 500-5번을 타고 귀갓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안 밀리던 회덕동이 왜 이리 밀리는지 모를 일이더군요. 이 때문에 모랸역에 도착하니 직행버스는 10분 전에 이미 가버린 뒤여서 다음 버스를 기다려 타고 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기껏 기다려서 탔더니 고속도로가 왕창 밀리네요. -ㅅ-;;
결국 집에 오니 오후 9시가 넘어 있었는데, 도로 정체가 좀 많이 짜증났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무갑리와 우산리, 봉골도 가볼 수 있었으니 참 기분좋은 하루였고, 광주시내버스를 좀더 알 수 있었던 의미있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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