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으로 출장을 갈 일이 생겨 출장 전날 휴가를 냈던 저는, 수원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대구역을 향해 가게 되었습니다. 김천에서의 일정이 오전 9시부터였던 탓에 전날인 3월 20일은 대구 구경도 할 겸 대구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김천으로 가는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수원역에서 대구역까지는 3시간 잡으면 되는데, 수원역을 오전 9시 22분에 도착한 부산행 ITX-마음을 타니 과연 오후 12시 17분이 되어 대구역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
대구를 새마을호 타고 가는 것도 생각보다 정말 괜찮더군요. 대구는 머니까 KTX 타야 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광명역은 집에서 가기 애매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탓에 목적지까지의 총 소요시간은 광명역에서 KTX를 타나 수원역에서 새마을호를 타나 결국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입니다. 제 기준에서는 부산의 경우 KTX를 타는 것이 고작 한 시간 빨리 도착하는데, 대구는 그런 차이조차 없는 것을 보니 대구 이남부터 소요시간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전 이후 보이는 추풍령, 그리고 경상북도의 풍경은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영남이 아무런 문제점이나 단점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나~마 제일 인간답게 사는 곳은 영남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릅니다(신라 이래로 건국 및 국가 기틀 확립에 이바지한 사람들은 경상도 출신이 많기도 하고). 영남에서만 산 사람은 이걸 못 느끼겠지만, 부모 중 한 분이 영남 사람이라 영남과 연관이 없지는 않았던 제게는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있었죠.
하지만 영남의 또다른 대도시인 대구는 그동안 경부선 철도 및 경부고속도로로 지나가기만 했었던 미지의 동네였습니다. 사실 대구는 작년 11월 초에 운문사로 단풍 구경을 가려고 왔던 적은 있지만(2023년 11월 1일 시승기 참고), 하룻밤 지내는 거점이었을 뿐이므로 구경을 해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죠. 또한 대구는 작년에 새로 편입된 군위군을 제외해도 상당히 넓었고, 당장은 여기 버스들을 타보러 오는 것에 대단히 큰 어려움이 있으니 특정 장소들을 구경하는 식으로 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첫 번째로 간 곳은 동성로에 있는 중국집인 중화반점이었습니다. 대구에는 야끼우동이라는 요리가 있는데, 이따 저녁에 먹어볼 콩국과 마찬가지로 야끼우동 또한 수도권에는 없기 때문에 이걸 먹어보기로 했던 겁니다. 중화반점은 이 야끼우동이라는 요리를 최초로 개발한 가게이니만큼 안 들를 수가 없습니다. ㅋㅋ
동성로는 대구역 근처에 있는데, 바로 이것이 제가 동대구역이 아닌 대구역에 내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열차가 대구역에 도착하니 열차 안에 꽉 찼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었는데, 이들은 아까 김천역과 구미역에서 탔던 사람들이라 이 사람들이 어떤 패턴으로 다니는지 다시 한번 짐작 및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대구역을 빠져나오니 큰 사거리가 보이는데, 지금이 평일 대낮인 것은 감안해야 했지만 가게들이 좀 줄어든 듯한 모습도 보이는 등 서울보다는 확실히 사람이 적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누가 대구의 중심 아니랄까봐 버스들과 사람들이 그래도 좀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더군요. 이곳 버스들은 우리동네 버스들과는 차량만 똑같을 뿐, 도색 및 노선, 카드 단말기, 그리고 기사아저씨에 이르기까지 나머지들은 모두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대구시내버스들을 타볼 날은 과연 찾아올 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ㅎㅎ
중화반점을 찾아 들어갔더니 여기는 QR코드를 이용하여 휴대폰으로 주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찾아오고 있는 CBDC, 그리고 통제 사회를 생각나게 했지만 디지털이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라고 시발들아 이런 주문방식은 손님의 주문내용을 잘못 파악할 위험을 낮춰주는 등 종업원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장점도 있으므로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야끼우동과 탕수육 소짜를 시켜놓고 기다리니 드디어 눈앞에 야끼우동과 탕수육이 들어옵니다.
야끼우동은 볶음우동 비슷한 요리였는데,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맵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신라면보다도 덜 매웠습니다. 또한 새우를 비롯한 오징어 등 해물도 수도권과 다르게 생각보다 꽤 들어가 있어서 삼선우동을 볶음 버전으로 먹는 느낌이었죠. 콩국과 마찬가지로 야끼우동 또한 수도권엔 없는 것도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잘 먹고 나온 저는 대구근대역사관을 구경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건국 또는 부국강병을 위해 뛰어다녔던 큰 인물들은 경상도, 특히 경상북도에서 많이 나왔는데 대구는 경상감영도 있는 등 주요 도시 중 하나였기에 이번 기회에 역사를 보는 것도 괜찮았던 것이죠. 중화반점에서 나름대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다보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슬슬 걸어가 봅니다. 지도를 봐가며 넓직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걷다가 골목으로 접어드니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나올 법한 네모난 건물 한 동이 보이는데, 이곳이 대구근대역사관이었고 출입문 바로 근처에 경상감영 공원도 있었습니다.
역사관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입장료는 무료여서 입구에 앉아있던 직원을 뒤로하고 바로 구경에 들어갔습니다. 신라부터 시작해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통치하는 현재, 그리고 대구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것까지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역사관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던 대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역사관을 나온 저는 서문시장을 가기로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보는데 때마침 623번이 금방 온다고 하길래 이걸 타기로 합니다. 사실 여기서 서문시장은 한 정류장 거리였지만, 동대구역 근처에 예약해둔 모텔에 들러 짐을 풀고 갓바위도 가봐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시간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타게 되었죠.
오후 2시 17분이 되자 623번이 도착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문시장의 맨 왼쪽 끝부분인 큰장네거리를 경유하면서 사거리 신호를 2개나 연거푸 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려서, 서문시장을 볼 시간은 10분 될랑말랑하게 되었습니다. -ㅅ-;;;
결국 저는 시장 너머 계명대병원쪽으로 빠르게 걸어가면서 최대한 가게들을 훑어봐야 했지만, 아쉽게도 찾는 물건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갓바위를 다녀온 다음에도 여길 다시 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가게들 문 닫을텐데), 어쨌든 하는 수 없이 저는 651번을 타고 동대구역으로 가야만 했죠. 이번에 오는 버스를 타야만 예약해둔 모텔에 들러 짐을 풀고, 하양으로 가는 누리로 열차를 안정적으로 탈 수가 있다보니 시간 여유가 너무 없었습니다. ㅜㅜ
아직 시간은 오후 3시가 안 되었지만, 지금 갓바위를 가더라도 내려오다가 해 떨어질 판이라 시간이 부족합니다. 야간 등산은 위험하기도 했지만, 갓바위에는 멧돼지도 나오기 때문에 밤에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기는 조금 위험했던 겁니다.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오후 3시가 넘어 있었고, 저는 서둘러 모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모텔이 1박 요금에 비해 진짜 좋다보니, 왜 작년에 왔을 때는 모텔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까지 들더군요. 이래서 아는 게 힘이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는가 봅니다. -ㅅ- ㅋ
짐을 풀고 나니 오후 3시 20분이었기에 저는 서둘러 동대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작년에 왔던 곳이라 더 이상 낯설지 않았던 통로를 따라 승차홈까지 가보니 오후 3시 41분에 동대구를 출발하여 태화강으로 가는 누리로 열차가 출발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리로 열차는 한때 수도권에서 운행을 했었지만, 이제는 동해선 등 비수도권 노선에서만 운행하는지라 오래간만에 보니 정말 반갑더군요. 열차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제법 타고 있어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오후 3시 41분이 되자 열차는 바로 출발하였고, 왼쪽 차창으로 팔공산과 신서혁신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구선을 따라 영천 쪽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가천역 이후 대구선을 따라가면 나오는 다음 역은 하양역인 줄 알았는데, 중간에 역 하나가 또 있는 모습은 다소 의외였습니다(알고보니 청천역이라는 폐역이었더군요).
대구지하철 1호선이 가까운 미래에 하양으로 연장 예정인지라 1호선 선로가 근처로 보이는 가운데 열차는 동대구역을 출발한 지 16분만에 하양역에 도착합니다. 뒷갓바위로 가는 경산 803번을 타려면 길 건너 한 블럭을 걸어가야 했지만, 이곳 하양을 와보니 생각보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가게들도 프랜차이즈들이 제법 들어서 있어서 대구의 일부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류장에서 803번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외국인이나 어르신이 아닌, 젊은이들이 많이 보여서 정말 놀랐죠. 여기는 영천시내버스도 지나다니는 곳이라 난생 처음으로 영천여객 버스를 만났는데, 그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ㅋㅋ
이 동네에 왜 이렇게 젊은이들이 많은지 생각을 해보다가 뒷갓바위 가는 803번의 운행경로도 확인할 겸 지도를 보니 그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곳 하양에는 대구카톨릭대, 경일대, 호산대 등 대학들이 제법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대구와 영천을 오가는 길가에 있는 이 동네가 의외로 활기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대구지하철 1호선을 하양으로 연장하기로 한 것은 정말 잘된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인구는 부산이 더 많지만, 광역교통 등 주변 지자체들과의 상호 협력은 대구가 훨씬 잘하고 정책들도 잘 진행되는 편이라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하더군요. ㅋㅋ 창원하고 울산은 2020년대에도 옛날만치로 부산이랑 싸움이나 하고 자빠졌고 김해는 지네 집구석이 뱅신같고 도대체가 진짜...
아참 저는 갓바위를 간다면서 왜 생뚱맞은 하양으로 온 걸까요?
이쪽 지리를 잘 몰라서 그런 거 아니냐구요?
갓바위는 대구 쪽을 앞갓바위, 경산 쪽을 뒷갓바위라 하는데, 뒷갓바위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수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산 803번을 타고 뒷갓바위로 간 다음, 앞갓바위로 내려와 대구 401번을 타고 대구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죠. 마침 오후 6~7시 이후에 뒷갓바위를 출발한 803번은 하양에서 중간 종료한다는 정보도 있다보니 더더욱 뒷갓바위 루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803번은 30분에 한 번꼴로 다니는데, 다행히 10분 뒤면 도착하는지라 오래 기다리는 것 없이 오후 4시 19분에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뒷갓바위 종점까지는 40분 정도 잡으면 될테니, 저는 맨 뒷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갓진 모습의 버스는 곧 하양읍사무소를 찍고, 하양우미린아파트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줍니다. 생각과는 달리 바로 와촌면사무소 쪽으로 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나마 있던 승객들은 이 구간에서 거의 다 내려버립니다.
아참 경산시내버스의 안내방송은 처음 벨소리만 부산과 양산, 창원과 똑같았고 나머지는 전부 다르더군요. 목소리가 구글 TTS 느낌이 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옛날 모닝스타 안내방송 같은 것보다는 훨씬 음질이 좋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아산보다 낫다
우미린아파트를 나온 버스는 와촌면사무소를 향해 북동쪽으로 달리는데, 뒷갓바위 종점에는 예상대로 오후 5시에 도착할 각이었습니다. 뒷갓바위에서 올라가면 30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나마 동지를 지나고 춘분이 며칠 안 남은지라 해가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됩니다. 지금이 한겨울이었다면 뒷갓바위 종점 도착하자마자 캄캄해질 판이었으니 말이죠. -ㅅ-;;;
생각보다 썰렁한 느낌이었던 와촌면사무소 앞을 지나니 곧 동강삼거리가 나왔고, 승객은 저를 포함하여 세 명밖에 없던 버스는 여기에서 좌회전을 하여 팔공산 쪽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길을 따라 쭉 직진하면 음양종점, 그리고 능성동 종점이 나와 대구버스와 연계가 되더군요. 하지만 신한리 마을회관을 지나자마자 우회전을 하니 이 803번 이외에 다른 시내버스는 없는 단독구간이 펼쳐졌고, 버스는 아주 빠른 속력으로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군청 홈페이지의 시간표도 얼추 준수해가며 차분하게 다니던 청도버스와는 아주 다른 모습에, 청도가 별종(?)이었던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ㅅ- ㅋ
밀양 감물리만큼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가파른 산길을 열심히 올라가던 버스는 갓바위 주차장 앞 차단기도 가뿐하게 통과하여 오후 4시 57분에 뒷갓바위 종점에서 회차를 합니다. 하양역에서 뒷갓바위 종점까지 40분 잡으면 된다는 제 예상은 보기좋게 맞아들어갔습니다.
정류장에는 803번 시간표도 붙어 있었는데, 시간표를 보고 있으니 제가 탄 버스는 곧 왔던 길로 다시 나가버리더군요. 다음 버스는 오후 5시 20분에 있었지만,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지는 않을 것이므로 버스의 뒷모습과 시간표를 사진으로 잘 남겨주었습니다.
버스가 떠나니 갓바위 오가는 사람 몇 명 보이는 걸 빼면 주변이 정말 조용합니다.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정류장 반대편으로 나 있었는데, 갓바위 주차장에 있다던 셔틀버스는 보이질 않았고 길 또한 자동차가 올라갈 만한 모습이 아니더군요. 이건 또 뭔가 했는데, 알고보니 제가 803번을 타고 도로 끝까지 올라와버린 덕분에 그 버스는 탈 필요가 없던 것이었습니다. 자가용으로 뒷갓바위를 찾아오면 아까 제가 통과했던 차단기를 통과하지 못하므로 셔틀버스가 있는 것이었는데, 여길 시내버스로 와버린 덕택에 이번에는 1승이 아닌 2승을 챙겨가게 되었지요.ㅋㅋ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누가 팔공산 아니랄까봐 처음부터 오르막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몸은 쌩쌩한데 숨차는 것 하나 때문에 미쳐버리는 저였지만, 호흡기 질환자나 어르신은 쉬엄쉬엄 올라가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올라가는 내내 보였을 정도라는 사실은 감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단이 가파른 곳들도 있었지만, 올라가는 길 중간에 절이 있는 걸 보니 꼭 히말라야 등산을 위해 해발 3000m 넘는 곳에 있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ㅎㅎ
숨을 헐떡이며 커다란 바위 계단들을 꾸역꾸역 올라가니 갓바위 이정표에 적힌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보였고, 대웅전도 만나게 됩니다. 높은 산에 있는지라 건물 하나만 덜렁 있었지만 여기 절 이름이 선본사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웅전이 있는 곳을 지나 계단을 따라 100m쯤 더 가니 드디어 갓바위가 등장합니다. 숨이 차서 조금 올라가다가 쉬고를 반복했었는데도 뒷갓바위 버스종점에서부터 30분밖에 걸리질 않았는데, 사진으로만 보고 말로만 듣던 이 장소를 직접 가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아래를 보니 경치도 진짜 예술이었지요. ㅋㅋ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갓바위.
평일인데도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기도중이었는데, 올라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을 종종 보았던 걸 생각하면 여기도 주말이면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더군요(나중에 알고보니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 소원을 하나 빌어보았습니다. 가까운 시일내로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소원을 빌고 나니 오후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금방 해가 질 것이기 때문에, 아쉽지만 이제는 내려가야 했습니다. 제가 올라온 길은 갓바위 부처님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쪽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난 길이었는데, 이제는 대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왼쪽으로 이동해보니 대구방향이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갓바위 부처님 주변으로 지어진 절 건물들 때문인지 대구 쪽으로 내려가니 또 히말라야 산맥의 마을을 방문한 듯했지만, 이제는 하산을 하는지라 집에 돌아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까 올라올 때보다 경사가 1.5배는 더 가파르기도 했지만, 돌계단 일부가 부서진 곳도 있고 난간이 허술한 곳도 간혹가다 있는 수준이어서 아무 생각없이 가면 조금 위험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는데, 대구광역시와 경산시는 등산로 정비 좀 안 해주나? -ㅅ-;;;
이 때문에 생각보다 속도가 붙질 않는데, 올라갈 때보다도 진행이 더디다는 느낌마저 들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을 다섯 명은 만났는데, 나는 분명 힘들어서 미칠 거 같은 길을 다들 잘만 올라가니 혀를 내두르게 되었습니다.
올라갈 때와는 또다른 고난을 겪으며 힘겹게 내려가는데, 멀리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절에서는 오후 6시가 되면 저녁 예불을 하는데, 그 종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가보다 싶더군요. 해가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쉴 틈은 없었지만, 마침 잠시 서있을 만한 공간도 있고해서 종소리와 함께하는 팔공산의 멋진 경치를 동영상으로도 남겼습니다.
동영상을 찍고 다시 내려가는데 진짜 계단 한번 많습니다.
대구, 그리고 경산 사람들 갓바위 때문에 체력이 좋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는데, 이걸 반대로 올라갔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진짜 너무 아찔하더군요. 그래도 돌계단과 씨름하며 하산을 시작한 지 40분 정도가 지나니, 돌계단은 끝이 나고 시멘트 내리막길이 등장합니다. 이제는 경사가 좀 완만해진다는 신호이자 401번 버스종점도 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발걸음에 힘이 납니다.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얼마 가지 않아 절이 하나 보였는데 여기는 관음사라고 하더군요.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을 가봤더니 물도 안 나오고 상태가...우웩;;;
미련없이 걸어나와 관음사를 뒤로하고 401번 버스종점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제는 해 지는 시간인지라 저 멀리 뒤에서 저를 따라오는 아주머니 한 분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도를 보니 버스종점까지는 1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었기에 얼른 서문시장 들르고 웰빙콩국 가서 콩국 먹어야지 하며 열심히 걷는데, 저 멀리 검은 물체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들개인가?
그 물체가 저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도록 가만히 서서 살펴보니 들개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습니다. 해 떨어진 직후였긴 하지만,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다른 야생동물의 모습 또한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건 뭐지??
갸우뚱하다가 문득 생각난 동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멧돼지였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여주나 양평, 가평의 외진 산속이 아니면 멧돼지를 만나기 쉽지 않지만, 이곳 팔공산에는 멧돼지가 있으며 갓바위 가는 길에도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던 겁니다. 멧돼지가 나타나더라도 아까 돌계단 같은 곳 주변에 나타나지 않을까? 했었는데, 버스종점에서 도보 10분정도 걸리는 지점에서 만나니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멧돼지와의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어 멧돼지가 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기에, 저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만난 멧돼지였지만 사진으로 남길 엄두는 나지 않았던 겁니다. 날이 어두워져 있어서 찍어봤자 제대로 나오지도 않지만, 녀석을 굳이 자극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죠.
멧돼지 때문에 계속 가만히 있으니 아까 뒤에서 저를 따라오던 아주머니도 어느새 바로 뒤에 와 있었습니다. 앞에 멧돼지가 있다고 말씀드리니 아주머니께서도 그 물체를 보더니 멧돼지가 맞다면서 가만히 있으시더군요. 저 녀석이 우리쪽으로 오면 어쩌지????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멧돼지는 금방 길 옆으로 다시 사라져 버렸고, 우리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아주머니께서도 갓바위를 갔다가 내려오는 중이었는데, 대구에 살고 있으며 갓바위는 종종 들른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바람 쐴 겸 갓바위를 왔다가 내려가는 길이고 401번을 탈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자기는 데리러 온 사람이 있어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버스는 주차장 반대쪽에 정류장 세워진 곳에서 타면 된다며 잘 알려주시더군요. ㅎㅎ
멧돼지를 만난 지점을 지나니 금방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마운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장소로 가보니 401번 한 대가 출발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곧 출발할 느낌이라 얼른 카드 찍고 들어가 있으니 과연 1분 후 바로 출발합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갓바위종점에서 탄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지만, 넓직한 도로를 따라 대구 시내로 달리면서 사람들이 속속 승차하는 바람에 시내로 들어오기 전부터 버스 안에는 10명 가까이의 손님들이 있게 됩니다.
시내로 들어오기 전에 탄 승객 중에는 할머니 한 분도 있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 건지 혼잣말로 아무에게나 욕을 지끼더군요. 그런데 이 할머니, 현금이 없는 것은 물론 카드에 잔돈도 없는 상태로 그냥 냅다 버스를 탔다보니 결국 기사아저씨께서 계좌번호 알려주면서 할머니와 옥신각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기사아저씨께서도 욕설을 들어가며 운전을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확실히 여기는 경남과는 다르게 첫 억양이 상승조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나름대로 카랑카랑한 맛(?)이 있더군요. -ㅅ-;;;; 하지만 경남은 반대로 중후한 데가 있어서 역시 쎄게 들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길다란 터널을 하나 지나니 공산댐 정류장이 나왔고 곧 이시아폴리스아파트를 경유하는데, 의외로 아파트 안을 들어갔다가 나오더군요. 지도로 운행경로를 보니 동대구역 방향만 아파트 안길을 간다고 되어 있었는데 나름대로 땡 잡긴 했네요. -ㅅ- ㅋ
이시아폴리스아파트 이후로는 점점 건물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누가 대구의 인기노선 아니랄까봐 저녁인데도 사람들이 계속 버스에 승차하여 입석도 세웁니다. 대구공항을 지나니 곧 아양교가 나오는데, 대구 내 지명들 중 하나이기도 한 아양교를 이렇게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아까 탔던 그 미친 할머니는 대구공항 전에 내렸기 때문에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ㅅ- ㅋㅋ
아양교역 1번출구에 내린 저는 서문시장을 가기로 하고 808번에 승차합니다. 아까 갔던 하양보다 더 동쪽에 있는 금호읍에서부터 온 버스였는데 이게 서문시장까지 가다니 역시 서문시장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퇴근시간도 지나가는 저녁인지라 교통체증은 없었고 버스는 오후 8시 20분 약간 안 되어 서문시장역 앞에 저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으로 들어가보니 가게 문들이 다 닫혀 있더군요. 사실 고향동네에도 오래된 시장이 있었던지라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광역시의 시장, 그것도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시장인데도 오후 8시 혹은 그 이전에 다들 문 닫고 가버리다니 이것 참 미치겠네요. -ㅅ- ㅋㅋ
결국 서문시장은 다음에 와서 둘러보기로 하고, 저는 3호선 전철을 타고 명덕역으로 향합니다. 비록 시장에서 살 물건은 사지 못하게 됐지만, 콩국은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죠. 3호선 전철은 모노레일이었는데, 용인경전철과는 또다른 맛이 있어 타볼만 하더군요. 이로서 비수도권 광역시 지하철 중에서 제가 타보지 못한 노선은 올해 12월 개통예정인 대구권 광역철도를 제외한다면, 부산 3호선과 대구 2호선, 광주 1호선 이렇게 3개만 남게 됩니다. ㅋㅋ
명덕역에 내린 저는 웰빙콩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일콩국을 갈 수도 있었지만, 웰빙콩국은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문을 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가보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던 겁니다. 여기는 명덕역에서 남쪽으로 100m 가량 걸어가야 했는데, 대구 시민이 아니면 가볼 일이 없을 듯한 위치였습니다. 이런 가게 좋지요. ㅋㅋ
가게로 가보니 천만 다행히도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콩국은 물론 토스트와 콩국수, 비빔국수, 잔치국수 등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가격을 보니 비빔국수와 잔치국수가 7000원 정도 되었던 것을 제외하면 다들 5000원 아니면 6000원 하더군요. 지금 분명 2024년인데 가격이 진짜 (좋은 의미로) 미쳤습니다. 키아 ㅋㅋㅋㅋ 섬마을훈태님은 여기도 촬영 좀 와보세요
저는 바로 콩국, 그리고 토스트를 시켰습니다.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은 아니었기에 금방 먹어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고소한 느낌은 아주 잘 살아 있었습니다. 토스트는 옛날 토스트였지만 이삭토스트 뺨칠만큼 뛰어난 맛을 보여주고 있었고, 내용물이 생각보다 진짜 많아서 5000원이라는 돈이 아깝지가 않았죠. 왜관 미군부대 근처에 있는 아메리칸이라는 식당에서 파는 토스트가 7000원이지만, 안에 돈까스를 비롯한 내용물이 꽤 많이 들어가서 오히려 싸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케이스였던 겁니다. 이런 가게가 앞으로도 계속 있었으면 좋을 텐데요. ㅎㅎ
웰빙콩국을 나선 저는 반월당에서 전철을 타고 모텔에 돌아가기로 하고 405번에 승차합니다. 사실 명덕역은 1호선과 3호선의 환승역이기 때문에 그냥 1호선 타고 동대구역으로 바로 가도 됐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지하철만 타기도 좀 그렇고, 과연 반월당역에는 반월당닭강정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기 때문이었죠. 반월당은 먼 곳이 아니었기에 버스를 10분도 안 타고 금방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들어가본 반월당역은 듣던 대로 진짜 넓었습니다.
출구번호도 20번이 넘어갈 정도인데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반월당역은 우리나라 지하철역 중 출구 개수가 제일 많은 역이었습니다) 멋진 광장도 있었고, 부천역 지하상가나 자갈치역 지하상가도 울고 갈 정도로 큰 지하상가까지 있더군요. 부산 자갈치역 지하상가는 남포역, 그리고 중앙역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지하상가만 구경하면서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 게 가능할 정도인 걸 생각하면 깜짝 놀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크고 넓은 장소에 사람이 없고, 있어도 젊은이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더 잘 보인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반월당역에 온 시간이 오후 9시 30분이었다는 것, 대구의 인구는 2024년 현재 235만 정도에다 배후 인구까지 합쳐도 400만 될까말까하며 이것도 감소 추세에 있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했지만, 젊은이들이 서울만큼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은 여러모로 좋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여기 분명 서울의 에지간한 동네들보다도 나을 거 같은데 -ㅅ-;;;
아무튼 마침 근처에 ATM이 있어서 현금을 뽑고, 광장을 지나니 과연 있었습니다.
반월당 닭강정이 말이지요.
제가 찾은 이곳이 본점인지 본점 1호점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었는데, 반월당 닭강정은 진짜 반월당에 있어서 이름도 그렇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가게는 부산역에도 있는데, 이게 인연이 됐는지 본점을 와보게도 되었네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곳인 걸 반영하듯, 8000원짜리 치킨+떡을 포장했는데도 양이 제법 되었습니다. 이 닭강정은 모텔에 들어가 바로 해치워 버렸는데, 고기가 전체적으로 실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속초보다 나은 듯).
닭강정을 사들고 모텔로 돌아감으로서 이날의 여정은 끝이 납니다. 내일은 오전 8시 4분에 있는 KTX를 타면 되기 때문에 굳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 좋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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