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날씨도 춥고 이런저런 안팎의 사정이 있어 어디 나가질 못했었는데, 이번에 잠시 바람도 쐴 겸 해서 홈그라운드인 시흥시의 버스들을 간단히 타보고자 은행사거리에 오전 9시 15분에 도착한 경원여객 31-7번에 승차합니다. 첫 번째 타자인 38번 매화동 노선을 잡기 위해서였죠. 주말이어도 10~15분 간격으로 잘 다니고 있는 이 노선을 두고 굳이 "잡는다" 라는 표현은 맞지 않긴 하지만, 아무리 내가 타보고 싶어도 입맛대로 차가 와주는 게 아닌 31-5번과 31-9번을 생각하면 지체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31-7번은 역시 경원여객 안양영업소 차들 중 운행대수가 제일 많은 노선답게, 출근시간대가 막 지난 주말에도 자리는 다 채워 갑니다. 충전소만 있었더라면 진작에 다른 동네들처럼 신차들이 막 들어왔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탓에 10몇년 전에는 빳빳한 신차였으나 이젠 폐물이 다 되가는 로얄시티들이 다니다시피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간간히 있는 뉴슈퍼는 안산에서 굴려먹다가 들어온 차량이고).
하지만 옛날 31-7번에 들어오던 신차들은, 특히 1990년대 당시에는 정말 혁신적인 냉방 버스였습니다. 당시는 무냉방 버스가 있던 시절이라 냉방 버스에 한해 "냉방 버스" 라는 스티커가 앞에 붙어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혁신이 맞았던 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31-7번은 역시 구형 차량들을 타보는 게 제맛이기도 했죠. 지금은 31-7번이나 38번이나 한편으로 보기가 좀 그렇지만, 충전소만 생기고 나면 옛날의 냉방 버스 마크 없어지듯이 그 차들도 과거의 유물이 되어 없어질 테니 한편으론 짠해지더군요. 한때는 안양에 있는 회사를 다닌 덕에 정말 지겹도록 31-7번을 이용해서 출퇴근 했었으며 회사 동료 특례병들과 술자리에서도 버스시간 관련하여 한편으론 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는데, 집이 멀어 택시비는 몇 만원이요 버스는 안양일번가에서 11시 조금 넘으면 끊겨 버렸던 것이죠. -ㅅ-;;
나중에는 동료들도 같이 일하던 형도 이해해 주었지만, 한편으론 미안하기만 했죠. 나름대로 미운 정 고운 정 든 회사였지만 이젠 다른 회사로 옮긴 탓에 31-7번 탈 일이 전혀 없네요. 그나마 몇 달 뒤면 31-7번이고 38번이고 일부러 여길 오지 않는 이상 볼 일도 없어지게 되지만.....-ㅅ-;;
매화동을 향해 달리던 31-7번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니 정든 곳 다 두고 옮겨 가야만 하는 현실에 씁쓸한 웃음만 납니다. 하여튼 중간에 사람들이 조금씩 타고 내렸지만 수인산업도로가 뻥 뚫려 있다보니 버스 탄 지 10분도 안 되어 에이스아파트 입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38번 종점인 에이스아파트까지는 눈 감고 가도 될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여유 있게 걸어가니, 때마침 38번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언제 출발할 지 몰라 얼른 환승 찍고 승차하니 오전 9시 29분에 버스가 출발합니다.
매화동 안쪽에서 부천 나가는 유일한 버스인 경원여객 38번. 매화동 안길은 왕복 2차로라 그닥 쩌는 길은 아니지만, 대형차들만 투입되어 운행중인 노선 2개가(38번, 그리고 39번) 다니는 길이며 39번은 정말 자주 다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름 교행의 미가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38번은 정말 바람 쐬고 싶은 분은 한번쯤 타봐도 될 노선입니다. 종점에 내려도 39번과 환승이 가능하며, 시간표 굳이 안 봐도 이용 가능하니 타는 것도 어렵지 않구요. ㅋㅋ
좁은 매화동 안길을 지나 매화동사무소를 찍고 수인산업도로로 나가는데, 매화동 안길에서도 이 버스를 타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매화동사무소에서는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버스로 몰리더군요. ㅋㅋ
결국 입석까지 세워가며 매화동을 빠져나온 버스는 오전 9시 42분에 은행사거리에 도착했고, 저는 여기에 내린 다음 녹색교통 1번 마을버스 차고지를 향해 슬슬 걸어들어갑니다. 이 마을버스는 학창시절 때 31-7, 38번과 더불어 정말 뻔질나게 탔던 버스였는데, 31-5번 시간이 많이 남으니 26번 종점인 신천고가 가기 전까지 펼쳐지는 골목길 투어를 다시 해보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시내버스보다 싼 요금으로 학교에서 집까지 모셔주는 버스여서 아주 소중했던 1번 마을버스의 차고지는 워낙 많이 가본 데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 차고지에 도착하니 때마침 버스 하나가 막 출발하려는지 슬슬 움직이고 있어 얼른 그 버스에 환승을 찍고 승차하게 됩니다. 학창시절 때에는 대부분 BM090으로 운행하였고 BS090 신차가 2대 운행했는데, 이젠 그린시티로 차들이 대부분 교체가 되어 있더군요. 그 빳빳하던 BS090 신차는 어느새 낡아 가고 있었고, 세월의 무상함에 웃음이 나옵니다 ㅋ
오전 9시 45분에 종점을 출발한 버스는 매 정류장마다 손님을 한두 명씩 태우는데, 백제당약국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 버스를 타는 바람에 얼마 가지 않아 입석을 세워가며 골목길 투어를 합니다. 골목길은 좁았고 정류장 표시가 없는 곳도 많았지만, 승객들은 다 지역 주민들이라 알아서 적당한 장소에서 버스를 세워 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골목길을 카운티 같은 소형 버스도 아니고 중형버스로 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였죠. ㅋㅋ
게다가 이 마을버스는 시흥교통 31-1번과 노선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싼 요금에 배차도 좋아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람들이 대부분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녹색교통이 사장이 바뀐 뒤 막장이 되었다는 소리도 들리긴 합니다만 -ㅅ-). 삼미시장 간다며 타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습니다.
시간표를 슬쩍 보니 배차간격이 6~8분 정도였으며(사실 이게 북시흥 지역에서 015번 빼고 유일하게 10분 안쪽간격으로 다니는 버스인데, 매냐들이 이 글을 봤는지 이 멘트는 몇 년이 지나도 녹음기 틀어놓은 것마냥 죽어라고 써먹더만요. ㅋㅋ), 소사역 출발 막전차와 막차 출발시간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고 인천행 전철 막전차와 막차 승객들 다 받고 출발한다는 그동안 몰랐던 정보를 알아내고 내원사에 내리니 오전 10시 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이게 유일한 시흥마을버스이기도 하지만, 소사원시선이 생기면 신천동, 대야동 지역에 마을버스 노선이 1~2개 정도는 더 필요해지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 때까지 녹색교통이 좀만 더 버티며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죠. ㅋㅋ
내원사에서 신천삼거리까지 슬슬 걸어내려오는데, 일부러 매화동과 마을버스부터 공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31-5번 시간은 꽤 남아 있었습니다. 날씨도 추운 데다 얼마 전 감기에 걸렸던 탓에 콧물도 자꾸만 나왔지만 간신히 참아가며 차를 기다리니, 환승시간 30분을 넘기려는 아슬아슬한 찰나에 31-5번을 환승 찍고 타게 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매화동 갔다가 미산동으로 걸어가서 31-9번부터 탈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죠. 31-5번은 일단 탔으면, 끝까지 즐기는 게 진리니까요. ㅋㅋ (그 덕에 방산교회에서 31-5번 환승하면 1차로 풀로 못 타니 조금 재미없어지지만, 그런 거 매냐 중에 누가 할런지 싶네요. 어려운 것도 아닌데 -ㅅ-;;)
버스는 그 좁디좁은 태흥슈퍼 골목길에 이어 신천중학교를 지나 방산동을 향해 가고 있었고, 어느덧 그 쩌는 방산동 길로 진입을 합니다. 길이 쩔고 정말 많이 가는데,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농어촌버스까지 3박자가 짬뽕된 그 독특함도 매력이었죠. 31-5번 정말 오며가며 시간 맞으면 보는 오지노선이지만 두번세번 타봐도 후회 안할 쩌는 노선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ㅋㅋ
이 쩌는 방산동 길을 감상하며....CNG 충전소 설치비 받고도 설치가 안 되어 공사비 횡령 논란을 빚고 있는 포동 차고지도 보고(차고지 넓이가 좁은 것도 아니고, 충전소도 만들기로 되어 있었던 것인데 왜 충전소가 없을까 싶지만), 오전 10시 50분에 포동 종점에 도착합니다.
당초 계획은 포동차고지에서 오전 11시 10분에 출발하는 31-9번을 타는 것이었으나, 부천역에서 오전 10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를 잡기로 합니다. 사실 무리수이긴 했지만, 31-9번은 미산동 방향으로 타고 들어오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었죠. 그러려면 오전 11시까진 신일초등학교로 가야 했는데(시민교회에서 타려고 하면 안 세워줍니다. 거기서 좌회전 하기 때문에 -ㅅ-), 때마침 31-5번 내리니 얼마 안 있어 31번이 나타나 승차를 했지만 웬일인지 이 버스, 출발부터 시작해서 상당히 꾸물댑니다. 신일초등학교에서는 신호까지 걸리고 말았는데, 설상가상으로 31-9번이 맞은편에서 나타나 슝 달려가 버렸죠. 아놬;;;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부천역에서 오전 11시 5분에 출발하는 그 다음 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그 다음 차는 오늘이 주말이다보니 50분이나 뒤에 있었으므로, 이번 차를 꼭 타야만 했습니다. 20분 뒤에라도 버스 있다는 것은 감지덕지해야 했으나, 이 사건 때문에 31-9번이 오늘 시승의 마지막 노선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ㅅ-;;
일단 마음을 비우고 31번 계속 타다가 소래중,고등학교 입구에 내린 다음, 때마침 뒤따라오던 31-7번을 타고 삼미시장에 내려 15분 정도 기다리니(의외로 버스가 늦게 왔다능) 26번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26번 보다는 31-9번을 택할 저였기에 그냥 보내버리고, 계획대로 31-9번을 타게 됩니다.
주말 낮이었지만 버스 안에는 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 미산동 가는 사람들이겠구만 ㅋㅋ
신일초등학교를 다시 지나고 드디어 시민교회에서 좌회전을 한 버스. 곧이어 미산동으로 들어가며 제가 노렸던 1차로 길을 지납니다. 1차로 노선이 드문 시흥시에서 31-5번과 더불어 31-9번 또한 짧지만 1차로가 존재했으며 뒤이어 좁은 안동네 골목길을 달리는데, 정확히 10년 전 처음 31-9번을 타고 미산동을 갔던 그 때나 지금이나 재미있습니다. 시멘트 1차로였다가 깨끗이 포장되었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오지노선이 빈약한 시흥에 양이 많은 31-5번과 짧지만 굵은 31-9번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 ㅎㅎ
이 미산동 구간이 끝나자 39번 국도가 눈에 보이고, 오전 11시 30분에 포동입구에 하차합니다.
노선이 처음 생길 때부터 31-9번은 대림슈퍼가 종점이었는데, 이젠 포동으로 연장된 덕택에 종점에서 연계가 좀더 편해졌네요. 예전 같았으면 종점에서 골목길 따라 39번 국도로 나왔어야 할텐데 말입니다(그렇게 해도 39번 국도 가까우니 상관없지만요) 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의 변화는 반드시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31-9번이 대림슈퍼가 종점이었던 옛날 그 시절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이제는 31-9번이 미산동 경유 포동행 버스가 되어버린 탓에 혹여나 31-3번 같은 거 타라며 승차거부를 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동네는 굳이 왕복하지 않아도 해결이 가능했으며 돌아간다고 뭐라하는 것도 정말 드문 일이라는 것이(이제껏 일부러 여러 번 타봐도 기사님들 신경도 안 쓰심 ㅋ) 다행이었죠.
포동에 내린 저는 시화에서 올라오는 26번을 잡아 신천동으로 올라가기 위해 연성지구를 갔지만, 오늘 시승은 여기서 끝내야 했습니다. 이 시간에 신천동 방향 26번 탄다는 건 사실 택도 없는 일이었는데, 과연 버스는 저보다 먼저 가버렸고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은 붕 떠버렸으며, 오후에는 약속도 있다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26번 금이동 구간은 포기해야 했으나, 그곳이 사실 그렇게 쩌는 곳도 아니고 전에 몇 번 타보기도 해서 딱히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잠시 뒤 도착한 61번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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